“가르치려 들지 않고, 시대에 맞게 고쳐 써요”

박송이 기자

한국 최초 안데르센상 글 작가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이금이 작가

올해로 작품활동 40주년

스테디셀러 ‘밤티마을’ 시리즈 개정판 출간도

한국 최초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 작가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이금이 작가가 지난달 25일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한국 최초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 작가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이금이 작가가 지난달 25일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작품을 쓸 때만큼은 등장인물의 나이로 완전히 돌아가서 써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 시기마다 인간이 갖는 본질적인 마음은 같다고 생각해요.”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이금이 작가(62)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84년 <영구랑 흑구랑>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지난 40년 동안 아동·청소년 소설을 꾸준히 펴냈다. 지금까지 출간한 책만 해도 51권. 그의 작품에는 등장인물들이 대변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의 마음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새엄마가 좋으면서도 그 마음이 두려워 새엄마를 ‘팥쥐 엄마’라고 부르는 큰돌이(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자신의 가출에 함께해 준 친구들이 고맙고 든든하면서도 그들과는 다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리며 쓸쓸해 하는 유진(유진과 유진) 등… 물리적인 나이로만 따지자면 그 시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가 이토록 세밀하게 아이들의 마음을 작품에 담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이 작가는 “시대나 환경에 따라서 표현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 뿐, 어린이·청소년 시절의 보편적인 감정은 같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으면 그 인물처럼 되어 표현하듯 나도 작품 안에 들어가 열다섯 살 나의 마음과 감정을 싣는다”라고 말했다.

“작품을 쓸 때 내가 그들보다 50년 가까이 더 살았다고 해서 그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거나 지혜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은 절대 갖지 않으려고 해요.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들의 마음, 그들이 받은 상처를 같이 들여다보고 길을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쓰죠. 그게 저와 그들의 물리적인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의 작품에 담긴 보편성과 공감력은 시대를 뛰어넘고 국경을 넘어 공간적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 작가는 지난 1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 작가 부문 최종후보 6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2022년 이수지 작가가 그림 작가 부문에서 안데르센상을 받은 바 있지만, 글 작가 부문에서는 한국 최초다. 수상자는 오는 8일 열리는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발표된다. 그는 “처음에는 개인의 일이라고만 생각해 영광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면서 “동료 작가들을 비롯해 아동·청소년 문학계 모두가 함께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의 일을 넘어선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올해는 그가 등단한 지 4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1일에는 1994년 출간된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밤티) 등 ‘밤티마을 시리즈’ 3권의 개정판과 30년 후의 이야기를 담은 신작 <밤티마을 마리네 집>을 출간했다. 그는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해 꾸준히 개정판을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가는 “1980년대부터 글을 써왔는데, 지금의 사회적 감수성은 그 때와는 놀랄 만큼 달라졌다”면서 “과거의 잘못된 감수성이 ‘옛날에는 이랬어’ 하며 그대로 읽히는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일례로 그의 작품 <유진과 유진>(밤티)에는 남자친구가 손을 잡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친구가 조언하는 대목이 나온다. 원작에서 친구는 ‘세 번은 거절해야 해’라고 조언하지만, 개정판에서는 ‘잡고 싶으면 잡고 싫으면 말고. 전적으로 네 마음에 달렸다’는 내용으로 바뀐다.

역사소설로도 영역을 넓혀 활동해왔던 그는 차기작으로 1940년대 사할린 땅에서 살았던 한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을 준비 중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사계절), <알로하, 나의 엄마들>(창비)에 이은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그는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 그 시기를 살아냈던 인물들의 삶은 성공지향적인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도대체 뭘 얻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다. “오늘날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더 잘 그려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해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어야 전지구적인 믿음과 사랑도 펼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사람일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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