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원 시인 2012년 쓸쓸한 죽음…문인들 아무도 몰랐다

심혜리 기자

90년대 여성문학 새 지평 열며 후배 여성 문인에 영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1990년대 한국 여성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한 여성 시인의 고독한 죽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난간 위의 고양이>(1995), <이 완벽한 세계>(1997) 등의 시집으로 여성의 고통과 두려움을 독창적 미학을 통해 펼쳐온 박서원 시인이 2012년 별세한 것으로 확인됐다. 5년여가 지났지만 그동안 문단엔 그의 사망과 관련한 소문만 돌 뿐 정확한 소식을 알고 있는 문인이 없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지난해 자신의 트위터에 “박서원이란 시인이 있었다. (…) 최근에 그가 죽은 지 오래되었다는 풍문을 들었다. 정확한 사망일과 정황은 알려지지 않고”라고 썼다.

23일 박서원 작가의 유족에 따르면 시인은 2012년 5월10일 오후 별세했다. 그의 나이 52세 때였다. 작가는 유서를 남기진 않았지만 흰 종이에 두 문장짜리 ‘저작권 위임장’을 써놓았다. 처음엔 동생에게, 조카가 27세가 되는 해부터는 조카에게 저작권을 일임한다는 내용이었다.

장례식에 문인은 한 명도 없었다. 가족들이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인은 자신의 수첩에 “장례식에 부를 사람. 김정란, 최춘희, 노혜경, 이경림, 노향림 시인…”을 적어 놓았다.

시인의 장례는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어머니는 경기도 양동면에 있는 한 추모원의 아름드리 나무 아래 딸을 묻었다.

박서원 시인 2012년 쓸쓸한 죽음…문인들 아무도 몰랐다

1989년 ‘문학정신’에 ‘학대증’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박서원 시인은 여성의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자전적 문학을 통해 1990년대 한국 여성문학의 새 이정표를 썼다. 시인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죽음, 기면증 발병, 스물두 살 연상인 교수와의 사랑 등을 겪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허위의식 없이 작품에 녹였다.

1998년 발행된 그의 자서전 <천년의 겨울을 건너온 여자>의 추천글에서 김정란 상지대 교수는 “박서원의 존재는 1990년대 한국문학 안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박서원과 같은 경험을 가진 여성 중에서 이렇게 문학적으로 완결된 텍스트를 만들어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삶은, 한국이라는 아주 특수한 가부장 문화를 가진 땅에서 가진 것 없이 태어난 한 아름답고 재능있는 여성이 겪어야 하는 온갖 종류의 고난을 뭉뚱그려 가지고 있는 상징이며, 그의 고통 뒤에는 남성들에게 받은 학대를 여성에게 갚으며 살아온 이 땅의 전근대적 어머니들의 비극이 겹겹이 쌓여있다. 그는 시라는 칼로 그 순환고리를 끊어낸다”고 정의했다.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이 완벽한 세계>의 추천글에서 “그가 시라는 이름의 탈현실의 영역에 가장 현실적인 양태들을 심어놓는다면,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시커먼 주검에 지독한 생의 끈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꿈은 톱날, 찬란했네 머릿속 깊은/ 경련의 갈대숲으로 네 갈래/ 떨어져나가는 팔과 다리/ 나는 길가에 버려진 헌 구두처럼 굳게/ 침묵했네/ 침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겨울 비 오는 밤의 외투였던/ 내 고요한 타락을 위해서/ 바로 나였던 네 토막의 새로운 비명을/ 위해서”(‘날마다의 꿈, 나의 절단식’ 중)

그의 시는 특히 후배 여성 문인들에게 영감과 좌표가 됐다. 시인 김소연은 “여성의 목소리는 섬세하여 너무 작거나, 너무 날카로워 다소 신경질적인 것으로 느껴져 답답했던 그 시절에, 박서원의 시집 <난간 위의 고양이>는 (…) ‘여성성’이란 세계가 명백하게 어떤 식으로 존재하며 그 세계는 얼마나 힘이 있고 다정하고 무한한지, 그 매력을 여성인 내가 처음 맛본 시집”이라면서 “아직 20대였던 그 시절의 나는 이 시집에 크게 힘을 얻어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기대로 가득할 수 있었다”는 서평을 2014년 썼다.

시집 5권과 에세이집 2권을 낸 시인은 2002년 시집 <모두 깨어있는 밤> 발표를 마지막으로 활동이 줄었다. 노모와 함께 조카를 돌보며 투병생활 중에도 글을 쓰고 있다는 기사가 가끔 나왔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이마저도 잦아들었고, 작가로서 마지막 10년여 가까이를 침묵했다. 가족에 따르면 시인은 별세 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이제 더 쓸 것도 없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시인의 죽음에 대한 문인들의 문의가 많아지자 월간 ‘현대시학’은 지난해 11월에 구체적인 사망일과 정황 등은 모른 채 시인을 회고하는 꼭지를 마련해 김정란 교수와 이경림 시인이 추모글을 싣기도 했다.

출판사 ‘최측의 농간’은 시인을 기리기 위해 이달 말 박서원 시인의 첫 시집인 <아무도 없어요>(열음사·1990)를 재출간한다. <아무도 없어요>는 시인이 발간한 첫 책이지만 절판된 지 오래돼서 접하기 힘든 시집이었다.

“그해 여름은 창백했었다/ 가지마다 휘어진 잎들이 무성한 거리에는/ 낳아도 자라나지 않는 아이들이 득실거리고/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수차례 매질을 했으나 대낮이 깊을수록 대낮의 빛깔은 사라질 뿐 어디서 불어오는 뼈아픈 향기일까 나는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못했다”(‘단식기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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