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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문학수 선임기자

우연접속자

버나드 바이트만 지음·김정은 옮김 |황금거북 | 408쪽 | 1만6000원

[책과 삶]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한눈에 반해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남녀가 10년쯤 세월이 흘러서도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게,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그저 신기한 우연일까.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정신의학자 버나드 바이트만은 1973년 샌프란시스코의 헤이스 거리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11시에 “갑자기 숨이 막혀 부엌 싱크대에 머리를 박고 꺽꺽댔다. 목에 이물질이 걸린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숨이 막힌 적은 처음이었고 15분쯤 지나서야 겨우 정상적으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몇 시간 뒤 저자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사는 아버지가 새벽 2시에 돌아가셨다는 전갈이었다. 윌밍턴의 새벽 2시는 샌프란시스코의 밤 11시였다. 우연처럼 보이는 그 “완벽한 타이밍”은 저자의 의식을 뒤흔들었고, 그가 우연에 관한 연구에 뛰어든 계기로 작용했다.

[책과 삶]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감정이나 고통을 동시에 느끼는 경험을 한 이들은 의외로 적지 않다. 스위스에 살던 어떤 남자는 취리히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 익사하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눈앞을 퍼뜩 스쳐갔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한데 그 남자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끔찍한 장면이 스쳐간 바로 그 순간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집 앞 호수에서 거의 빠져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과 삶]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 남자는 바로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사진)이었다. 그는 이 경험을 ‘동시성’(Synchronicity)이라는 심리학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동시성’이란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을 외부의 사건이 거울처럼 비춰주는 것”이다.

우연에는 마음과 환경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 또한 반복되는 일상과 좁은 인간관계에서 벗어날 때 우연의 가능성이 커진다. 책에는 제리와 리타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련의 과정을 마친 제리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추도식을 마친 뒤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리타는 어머니의 재혼식에 참석하고 역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제리는 비행기의 통로 쪽에, 리타는 같은 열의 창가에 앉았다. 둘 사이의 자리는 비어 있었고 둘은 비행 내내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했을 때, 리타는 집까지 태워다주겠다는 제리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전화번호만 받아갔다.

어떻게 됐을까. 리타는 불만족스러웠던 남자친구와 결별하고 2주 후 제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둘은 3년의 연애 기간을 거치고 마침내 결혼했다. 제리는 수년간 그 결혼에 대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맺어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른 지금에 와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제리는 의사 수련을 마무리한 시점이었고, 경제력을 결혼의 전제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전국 어디에서건 취직해 괜찮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리타는 만족스럽지 못한 연인 관계를 막 청산하려던 참이었다. 둘은 중대한 가족행사, 아버지의 추도식과 어머니의 두번째 결혼을 치르고 감정이 고조된 상태였다. 게다가 두 사람은 문자 그대로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좁게는 비행기를 타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 중이었고, 넓게는 인생의 다른 가능성이 열리던 참이었다. 그들은 준비돼 있었다.”

저자는 미주리대학 컬럼비아 캠퍼스 정신의학부 학장을 지냈고 지금은 버지니아대학의 초빙교수다. 미국 우연연구학회(Coincidence Studies)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에서 우연의 다양한 사례들, 우연의 기저에 깔린 원인들을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우연이란 “주변의 환경과 내면적 욕구의 합작품”이다. 융의 ‘동시성’ 이론을 계승하고 있는 저자는 “우연을 유독 자주 접하는 사람들”을 ‘코인사이더’(Coincider)라고 지칭한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수월하게 마음의 상태와 외부의 사건을 연결”시키는 사람들이다. 책의 제목인 ‘우연접속자’가 바로 ‘코인사이더’를 뜻한다. 저자는 “(삶에서) 우연을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서 “의미 있는 우연을 많이 만들어낼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첨언한다. “고양된 감정 상태에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른 상황으로 이행할 것.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과감히 벗어나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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