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처방해 드립니다]가족과 갈등으로 생채기 난 마음…그 위에 바를 연고가 필요하다면

가족의 초상

오사 게렌발 지음·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112쪽 | 1만6000원

[책 처방해 드립니다]가족과 갈등으로 생채기 난 마음…그 위에 바를 연고가 필요하다면

저희 집은 가족 사랑이 좀 유별난 편입니다. 태어나 자라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이 부부싸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두 분의 금실은 유명하고요.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지금도 매일 가족 채팅방에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이가 각별하다고 해서 가족 간에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곱씹어 보면 갈등의 원인은 대부분 의사소통에 있었습니다. 꼭 전해야 할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은 부끄럽고 어색하다는 핑계로 꼭꼭 묻어두기만 했고, 이해하고 보듬어줘야 할 걱정스러운 마음은 감정을 앞세워 삐뚤게 내뱉었으니까요. 가깝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예의마저 상실한 채 던진 말과 행동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고요. 가족과 사이가 좋은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줄 아는 것과 다른 문제라는 걸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오사 게렌발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 <가족의 초상>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큰딸 마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5막 1장의 심리 드라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 가족의 붕괴를 유발한 어떤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마리의 부모에게는 절친한 친구 라그나르가 있습니다. 어느 날 마리의 집에서 거하게 술을 마신 라그나르를 마리가 차로 데려다주다 그에게 성추행을 당합니다. 다음 날 술이 깬 라그나르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과하지만, 오히려 마리의 부모는 친구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마리를 꾸짖으며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10여년이 흐른 후, 부모인 라이프와 건, 그들의 두 딸 마리와 스티나, 그리고 라그나르, 이 다섯 명의 인물들이 사건의 전말과 그로 인해 초래된 결과를 저마다의 입장에서 얘기합니다. 같은 사건을 경험했지만 모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문제 제기를 하기도 하고 소통하기 위해 시도를 해봐도 그들은 절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요.

오사 게렌발은 각 인물의 감정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한 가족의 의사소통 불능과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을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딸의 고통을 외면하는 부모와 서로에게 무관심한 부부, 비관적인 언니와 낙관적인 동생의 갈등. 처음에는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 책을 덮을 때쯤에는 모두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가장 많이 사랑하기에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가족.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가족 초상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데 모이는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밀린 안부를 나눌 생각에 들뜬 사람도 있을 테지만, 누군가는 가족과 겪게 되는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테지요. <가족의 초상>은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서로 간의 관계를 짚어볼 기회를 마련해주는 책입니다.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해도 각자 성격과 성향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고, 맡은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그로 인해 서로 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긴 연휴 끝, 생채기 난 마음에 연고 같은 책이 되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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