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건의 여행
라스칼 글·루이 조스 그림·곽노경 옮김 | 미래아이 | 40쪽 | 1만5000원
오리건은 곰이다. 스타 서커스단에서 일한다. 듀크는 광대다. 듀크는 오리건 다음 순서라 장막 뒤에서 그의 공연을 보며 곰 인형이 갖고 싶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공연이 끝나고 평소처럼 오리건을 우리로 데리고 가던 어느 날, 듀크에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나를 커다란 숲속으로 데려다줘.” 오리건이 말을 한 것이다. 듀크는 너무 놀라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짐마차로 돌아와 가만히 거울을 보던 듀크는 결심을 한다. ‘오리건은 아름다운 가문비나무 숲에서 곰 식구들과 함께 살아야 해….’
그렇게 둘의 여행인 듯 여행 아닌 여정이 시작됐다. 문을 나서자마자 자연이 펼쳐질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한참을 걸은 후에야 검게 그을린 도시를 벗어났다.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기차표 두 장과 햄버거 삼백 개를 샀다. 주머니는 비었지만 듀크는 행복했다. 오리건과 함께여서.
“보드라운 풀밭에서는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별빛 아래에서는 꿈도 꾸었습니다. 새소리는 잠을 깨우는 시계였고, 강물은 커다란 욕조였습니다. 온 세상이 우리 것이었습니다. 가방 맨 안쪽 구석에 동전 두 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대목 다음엔 주머니 사정으로 힘들어질 여정에 대한 푸념이 나올 줄 알았다. “나는 그 동전으로 플랫 강 위에 물수제비를 떴습니다.”
둘은 차를 얻어타고, 버려진 차에서 밤을 보내며 여정을 이어갔다. 달리는 기차의 맨 뒤 칸에 올라타 서로의 등에 기대 쪽잠을 청하던 어느 날, 눈을 뜨자 그곳에 숲이 있었다. 오리건이 꿈속에서 보았던 그런 숲. 갇혀 지낸 날들이 있었나 싶게 오리건은 금세 숲과 어우러졌다.
“나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침이 하얗게 밝아오면 나는 떠날 겁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마지막 그림은 하얀 눈밭을 홀로 걷는 듀크의 뒷모습이다. 고맙다고, 헤어짐이 아쉽다고 부둥켜안는 뻔한 장면은 없다.
오리건의 어깨에 올라 바라본 들판은 반 고흐의 그림 같았다고, 듀크는 그날을 “정말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책 표지가 바로 그 장면이다. 듀크는 그거면 된 거였다. 뻔한 장면을 기대한 건 속세에 찌든 어른의 시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