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읽고 전시회 초대권 받자!

몸으로 쓴 50년 역사를 만나다

박경은 기자

1967년 12월16일자 경향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란 예술적(?) 쇼. 이틀전인 14일 오후 서울 북창동 중앙공보관에서 열렸던 한 행사에 대한 르포 기사였다. 내용은 이렇다. 비닐 우산을 들고 앉은 여성 주위를 여덟명의 남성과 한명의 여성이 촛불을 든 채 ‘새야새야 파랑새야’를 부르면서 빙빙 돈다. 그리고 나서 촛불을 끈 뒤 비닐우산을 발기발기 뜯어내고 내동댕이친 뒤 소리를 지르며 짓밟는다. 이 쇼를 선보인 사람들은 “캔버스를 벗어난 우연적인 행위와 물체와의 충돌에서 일어난 미적사건이며 표현행위”라고 설명했다. 예술적이라는 표현 뒤에 의문부호를 붙인 것은 파격적이고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른 신문들 역시 이 ‘쇼’에 대해 보도하며 희한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의 청년 작가들 10명이 참여한 이 ‘쇼’는 한국 미술사에서 최초의 아트 퍼포먼스, 즉 행위예술로 기록된다. 서구에서 도입된 이 행위예술은 ‘해프닝’이라는 단어와도 뒤섞여 사용됐고, 많은 논란과 해석을 낳았다. 그렇게 시작된 국내 행위예술의 역사가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한국 청년작가 연립전의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 /한국행위예술 50주년 기념 자료전 제공

한국 청년작가 연립전의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 /한국행위예술 50주년 기념 자료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이 마련한 ‘역사를 몸으로 쓰다’전은 이를 기념하면서 행위예술의 의미를 되새기는 국제전시회다. 몸과 몸짓은 퍼포먼스를 표현하는 매체이자 본질이다.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역사를 몸으로 쓰다’는 행위예술에 대한 미술사적 접근이자 언어가 기입하지 못한 역사를 예술가들이 몸을 통해 환기시켜주는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장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내외 38팀의 70여점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머리를 풀어 헤쳐 붓글씨를 쓰는 영상 ‘머리를 위한 선’으로 문을 연다.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 온, 세르비아 출신 행위예술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발칸 연애 서사시’(2005년 작) 중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발칸의 역사적·문화적 토양에 천착해 온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발칸의 전통적 제의 속에서 섹슈얼리티의 의미를 탐구한다. 오노 요코의 ‘컷 피스’, 중국 현대미술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일본의 전위예술 집단 제로 지겐의 활동기록들도 아트 퍼포먼스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작품들이다. 제로 지겐은 1960년대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전위적인 퍼포먼스 그룹 중에서 가장 전위적인 것으로 분류되며 이들의 퍼포먼스는 ‘예술 테러리즘’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발칸 연애 서사시’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발칸 연애 서사시’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오노 요코 ‘컷 피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오노 요코 ‘컷 피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원로 작가 성능경의 1974년 작 ‘신문’ 시리즈는 벽에 붙어 있는 신문 기사 곳곳을 면도칼로 오려내 그 조각을 구겨 쌓아놓은 것이다. 유신 시대의 언론통제와 사전검열을 비판하는 퍼포먼스였다. 성 작가는 “당시 신문을 오리면서도 손이 덜덜 떨렸던 기억이 난다”면서 “한 신문사 기자가 인터뷰를 하자고 뒤에서 나를 툭 쳤을 때 정보기관에서 나온 사람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선 박찬경, 임민욱 등 중견 작가의 신작도 만나볼 수 있는데 우연찮게도 두 작가의 작품 모두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나온 성찰과 고민을 담고 있다.

박찬경 ‘소년병’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박찬경 ‘소년병’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근 국제 미술계에선 퍼포먼스가 주요 트렌드가 되고 있지만 이는 다양한 미술 언어 중에서 대중과 거리감이 비교적 큰 편이다. 세계적으로도 1960년대에 시작됐으나 본격적으로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영국 출신의 미술전문 저널리스트 윌 곰퍼츠는 <발칙한 현대미술사>를 통해 “가수 비요크, 레이디 가가, 배우 윌럼 대포, 케이트 블란쳇 등 대중문화계 인사들이 행위예술을 차용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미술관들이 행위예술을 중심으로 한 전시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기 시작했다”면서 “대중과 행위예술가의 소통이라는 기반하에 아트 엔터테인먼트 형태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21일까지다. (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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