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읽고 싶은 수필의 진수
김용준(1904~1967)은 경북 선산 출생의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수필가로 호는 근원(近園), 검려(黔驢) 등이다. 서울대 미술학부 교수를 지내고 1950년 월북해 평양미술대학 교수,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 분과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월북작가로 낙인찍혀 정지용, 이태준 등과 함께 오랜 세월 잊혀진 사람이었다. 파주시장으로 근무할 때 출판도시 대표인 열화당 이기웅 사장이 꼭 읽어야 한다고 권해 지금껏 머리맡에 놔두고 아무 페이지나 들춰서 읽곤 한다.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처음 출판된 <근원수필>은 1936년부터 1950년 사이에 발표된 글들을 모아 열화당에서 2009년 <새 근원수필>이란 제하의 책으로 발간했다.
근원 선생은 수필이란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맛, 단맛을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글”이라고 했다. 덧붙여 “마음속에 부글부글 괴고만 있는 울분을 어디 호소할 길이 없어 가다오다 등잔 밑에서, 혹은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던 끝에 공연히 붓대에 맡겨 한두 장씩 끄적거리다 보니 그게 그만 수필이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 수필이라지만 미술사가로서의 관점에서 쓰인 전문적인 내용도 많아 그냥 편하게만은 읽히지 않는다. 수필에 등장하는 김환기, 이상범 화백, 소설가 이태준, 현진건과의 우정, 교류 이야기도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격조 있는 문체는 말할 것도 없고 종종 등장하는 한시(漢詩), 시서화(詩書畵)에 정통한 글을 읽노라면 월북해 근원수필 속편을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허망한 생각도 해본다. 단순한 신변잡기에서 벗어나 자꾸 읽게 만드는 유려한 문장, 한자어가 많아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까닭은 유식함을 뽐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린 사람들이 꼭 읽어 근원 선생이 보여주었던 감성과 지성의 깊이를 체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