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바람에 R&D도 된서리…'핵연료 재순환' SFR 설계 중단

문재인 정부 들어 거세진 '탈원전' 바람에 연구개발(R&D)마저 된서리를 맞았다. 10년 간 이어진 소듐냉각고속로(SFR) 개발 사업이 내년 예산을 받지 못해 보류된다. SFR는 사용후핵연료를 최소화하고 재처리 연료를 사용하는 4세대 원자로다. 핵연료 처리가 목적인 R&D마저 정치 논리에 흔들렸다는 지적이다.

4일 미래창조과학부와 원자력계에 따르면 내년도 SFR 개발 사업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정부는 SFR 개발을 당분간 보류할 방침이다. SFR 개발 사업은 올해 말까지 1, 2차 계통의 특정설계를 마친다. 애초 내년 표준설계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이번 결정으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SFR는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 중인 차세대 원자로다.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재처리한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한다. 냉각재로는 소듐을 사용한다. 기존 원자로와 달리 높은 에너지의 중성자로 핵분열한다.

소듐열유체 종합효과시험시설
소듐열유체 종합효과시험시설

SFR에서 나오는 고준위폐기물은 기존 원자로 100분의 1 수준이다. 우라늄 이용률은 60배까지 늘린다. SFR를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재순환하면 기존 연료의 방사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원자력계 난제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정부는 SFR 설계를 중단하더라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연구는 계속할 방침이다. 하지만 SFR 연구와 파이로프로세싱 검증은 상호 연계된 R&D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애초 2020년까지 SFR 표준설계를 완료하고, 같은 해 미국과 공동으로 파이로프로세싱 타당성을 검증할 계획이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고온의 용융염을 이용,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 등 핵 물질을 분리하는 기술이다. 파이로프로세싱 결과물인 TRU(TRans Uranium)는 SFR의 연료다.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파이로프로세싱)과 SFR 개발을 연계한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이 같은 계획이 틀어지게 됐다.

SFR 원형로에 장전할 수 있는 핵연료 집합체 시제품
SFR 원형로에 장전할 수 있는 핵연료 집합체 시제품

미래부 관계자는 “연료처리 관련 연구는 계속하더라도 SFR 설계는 잠정 중단하기로 하면서 예산을 삭감한 것”이라면서 “2020년 미국과 공동으로 파이로프로세싱 타당성을 검증하기로 했는데, 두 사업이 연계된 만큼 결과를 보고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0년 타당성 검증 결과에 따라 SFR 개발 필요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검증 결과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두 사업 연계에 균열을 내면서까지 SFR 설계 중단을 결정한 셈이다. 정부 R&D 계획이 정치 논리에 휘둘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부는 내년도 국가 R&D 예산 심의·조정 때 원전 제염·해체, 방사선 활용 예산은 증액했다. 정권 코드에 맞는 예산은 늘리고, '원전'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업 예산은 깎았다는 지적이다.

10년 가량 국가 R&D 역량이 투입된 사업을 갑작스레 중단시켰다는 점도 문제다. SFR 개발은 2008년께 결정돼 2012년 사업단으로 확장됐다. 2028년까지 SFR의 사용후핵연료 저감 효과를 살펴보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공론에 부치겠다면서 선택지를 줄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원자력계 전문가는 “정책을 결정하려면 여러 가지 선택지를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SFR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여러 선택지 중 하나”라면서 “원전 정책을 재설계하겠다면서 선택지를 줄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