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종교적 함의 너머 역사·문화적 의미로 읽는 불화

도재기 선임기자

불화의 비밀

자현 지음 |조계종출판사 | 552쪽 | 3만원

경기도 안성 칠장사의 ‘오불회괘불도’(국보 296호·1628년)의 원본(오른쪽)과 윤곽도. 성보문화재연구원·조계종출판사 제공

경기도 안성 칠장사의 ‘오불회괘불도’(국보 296호·1628년)의 원본(오른쪽)과 윤곽도. 성보문화재연구원·조계종출판사 제공

불교 그림인 불화는 흔히 ‘부처님의 가족사진’, ‘그림으로 보는 경전’이라 표현된다. 사찰은 물론 박물관·미술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불화이다. 그렇지만 일부 불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불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불화에 표현된 많은 인물들과 그 인물들의 배치, 특정한 화면 구도, 독특한 색감과 표현방식, 화면에 나타난 다양한 기물에 상징적 의미들이 녹아들어 있어서다. 일반 회화와 달리 불화는 종교화로서의 특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보다 깊게 이해하는 데 있어 불교, 불교미술의 핵심인 불화를 빼놓기는 어렵다. 372년 고구려를 시작으로 백제, 신라에 차례대로 전래·수용된 이래 불교는 종교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이 땅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 문화 곳곳에 1600여년의 불교문화가 알게 모르게, 깊고도 넓게 스며들어 있는 셈이다. 현존하는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의 상당수가 불교와 관련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불화가 단지 종교화가 아니라 한국 문화와 역사를 더 풍성하게 이해하는 귀중한 인문학적 자료라는 의미이다.

[책과 삶]종교적 함의 너머 역사·문화적 의미로 읽는 불화

<불화의 비밀>은 인문학적 자료로서의 한국 불화의 입문서, 개설서라 할 만하다.

저자인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은 “불화를 마주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일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불화도 종교화라면 갖고 있는 특유의 지문, 코드가 있어 이를 알면 불화를 읽어 내는 일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 책은 “일반적 교양인들도 불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저자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은 종교화로서의 불화의 특성은 물론 종류와 용도, 양식의 변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조선시대 불화까지 시대별 특징을 전후 시대와 비교하며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해설하고 있다.

일반 회화와 달리 불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도식적이고 일관된 표현에서 나타나는 단순성, 성스러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을 포교하기 위해선 어렵지 않고 단순해야 하며, 화면 속 등장인물은 구원자로서의 성스러움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불교가 수용된 이래 삼국에서는 불교가 융성했다. 하지만 현존하는 불화는 극히 귀하다. 고구려는 ‘장천1호분’ ‘무용총’ 등에 나타나는 고분벽화가, 백제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 1호분 내부에 일부가 있으며, 신라와 통일신라 불화도 매우 단편적이다.

불교가 융성한 고려시대 불화 중 특히 채색화는 국제적 주목도 받지만 세계적으로 160여점 만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왜구의 약탈 등에 따른 것이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에는 석가모니불은 거의 없고 아미타불이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저자는 “당시 약탈자인 왜구가 아미타신앙과 관련된 정토종 영향 아래 있어 아미타불을 선호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불화는 여느 미술품처럼 당대 시대상을 온전하게 품고 있다. 귀족사회이던 고려 불화는 본존과 권속들이 상하로 뚜렷이 구분되는 2단 구도이며, 육체와 정신이 다르다는 ‘심신이원론’ 영향으로 측면 자세나 좌우비대칭 구도가 많다. 하지만 성리학과 심신일원론이 강해진 조선에서는 상하 2단 구도가 본존을 중심으로 원형 구도로 변화된다. 수직구도가 수평구도로 바뀌는 것이다. 또 정확한 좌우대칭 구도, 인물의 정면자세가 확립된다. 저자는 “풍부한 여백이 있던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화면도 꽉 채워진다”고 설명한다.

조선후기가 되면 새로운 불화들이 등장한다. 조선 불화에만 있는 ‘감로도’다. 감로도는 제례와 조상숭배의 유교문화가 불교 전통의 우란분재(사후에 고통받는 자를 위한 불교의식)와 결합돼 만들어진 특수한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야외법회에 사용되는 걸개그림 형식의 ‘괘불도’를 비롯, ‘영산회상도’도 나타난다.

저자는 “감로도에는 민중들의 생활상이 함께 들어 있어 주목된다”며 “괘불도 유행은 민중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 이에 따른 불교의 영향력 확대 등에 따라 당시 야외법회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분석한다.

책은 불화 역사와 특성의 흐름에 이어 한국 불화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9개의 불화를 별도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350여컷에 이르는 풍부한 이미지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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