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같은 그곳으로 가을 산책…무작정,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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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 같은 그곳으로 가을 산책…무작정,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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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초입, 새벽 기차를 타고 무작정 여행길에 나선다. 아무 계획 없이 떠나는 당일 여행이다. 무작정 길을 나설 때는 너무 익숙한 곳도, 너무 낯선 곳도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그럴 때는 경주로 가자. 언제나 거기 그대로인 듯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면서도 여행길의 설렘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곳, 경주로 가을 산책을 나선다. 

경주 구도심의 중심은 대릉원 일대다. 잔디 위를 여유롭게 걸으면 속이 탁 트인다.(사진=셔터스톡)
경주 구도심의 중심은 대릉원 일대다. 잔디 위를 여유롭게 걸으면 속이 탁 트인다.(사진=셔터스톡)

부산이나 대구 같은 대도시는 어쩐지 너무 북적거릴 것 같아 부담스럽고, 속초나 강릉은 여름 바다 지나간 자리가 왠지 쓸쓸할 것 같다면, 이번엔 혼자 가도, 무작정 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경주라면 어떨까.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는 KTX로 2시간이면 닿는다. 새벽 5시 15분에 첫차가 있고 돌아오는 마지막 기차는 밤 10시 55분에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당일 여행으로 콧바람 쐬기에 제격이다. 첫차와 막차는 미리 끊으면 10~20% 할인도 된다. 복잡한 머릿속, 기분전환을 위한 여행이라면 오랜만에 새벽 기차를 타는 맛도 새로우리라.

신경주역에서 경주시내까지 가는 버스도 여럿이다. 30~40분이면 족하다. 경주의 시골길과 구도심 곳곳을 누비며 달리는 버스도 서울에서 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연식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창 시절의 소소하고도 사소한 추억 하나쯤 있을 법한 경주.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까지는 아니더라도 수학여행 왔다가 처음으로 쓰디쓴 술맛을 알았다거나 새벽부터 경주에서 가장 높다는 토함산을 오르며 봤던 일출의 기억 같은 것이 슬며시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도착한 경주의 모습은 짐짓 차분하다. 이제는 더 이상 인기 있는 수학여행지도 아니고 그럭저럭한 신혼여행지는 더더욱 아닌 고도(古都)는 그 자리를 훑고 간 학생들이나 신혼부부들처럼이나 다시 나이를 먹었다. 

도시는 여전히 부드러운 곡선의 연속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 같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이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구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능선의 곡선을 지나치며 걷다 보면 엄마 품에 안긴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음악, 음식, 문학, 정치,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저명인사 다섯 명이 낮에는 각각 흩어져 경주를 여행하고 밤에는 다함께 모여 다채로운 주제와 관점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그만큼 경주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동네다.

대릉원, 계림, 최씨고택으로 이어지는 경주 걷기

경주는 크게 경주역과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경주 천년의 다양한 유적이 모여 있는 구도심과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을 연상케 할 정도로 수많은 불교 유적으로 가득한 경주 남산권, 그리고 보문호 주변으로 호텔, 콘도 등의 숙박시설과 현대적인 관광시설이 몰려 있는 보문관광단지로 나눠볼 수 있다.

불교 유적에 관심이 많다면 경주 남산으로 산행을 가도 좋고, 가족끼리의 나들이라면 보문관광단지도 좋지만 이번엔 훌쩍 떠난 여행이니만큼 무엇보다 경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에서의 ‘슬렁슬렁 산책’이 메인이다. 거리 위, 골목 곳곳에 놓인 능과 탑을 곁에 두고 걷다 보면 발길 따라 누구라도 시간여행자가 된다.

구도심의 중심은 대릉원 일대다. 넓은 평원에 펼쳐진 잔디 위를 여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대릉원 일대는 회색 건물 속에 답답하게 갇혀 살던 도시인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아이들이 공을 차고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딱히 유적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켜켜이 쌓인 과거의 기억과 현대의 사람들이 시공을 넘나들며 함께 어울려 노는 것 같은 기분이다. 

천마총 등 23기의 고분이 밀집해 있는 대릉원을 지나 첨성대까지 걷는 길에는 공원에 놀러 나온 시민들의 모습과 그 곁에서 노니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풍경처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교과서에서 보던 국보 제31호인 첨성대는 동네 이정표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평원 위에 덩그마니 서 있다.
교과서에서 보던 국보 제31호인 첨성대는 동네 이정표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평원 위에 덩그마니 서 있다.

교과서에서 보던 국보 제31호인 첨성대는 동네 이정표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평원 위에 덩그마니 서 있다. 당대에는 최고의 천문대였다지만 최첨단의 거대한 천문대들에 비하면 높이 9.17m, 밑지름 4.93m의 첨성대는 놀이공원의 조형물처럼 소박하게만 보인다. 누군가는 옆에서 “젠가(벽돌 모양의 블록을 하나씩 빼는 놀이) 같다”며 우스갯소리도 한다. 하지만 별을 관측해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읽고 우주를 관측해 세상살이의 견해와 지식을 넓혀갔던 신라인의 지혜는 첨성대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동경할 만하다. 최첨단의 장비 속에서도 근거리만 보고 사는 나의 시야는 어떠한가 반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첨성대를 거쳐 걸으면 바로 계림이다.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회나무 등 100여 주의 울창한 고목을 자랑하는 계림은 ‘닭이 운 숲’이라는 뜻으로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전하고 있다. 그 전설이야 어찌 됐든 계림은 완벽하게 걷기 좋은 길이다. 신라 건국 초기에 조성돼 2000년의 세월을 간직한 숲으로 여름은 여름대로 울창한 초록을 발산하고 가을은 가을대로 단풍을 드리우다가 겨울이면 처연하게 잎을 떨구며 그 가지마다 눈을 얹은 모습이 장관이다. 숲을 이룬 오래된 나무의 가지는 아늑하게 굽어 있고 두툼한 나무기둥에 등을 대보면 말없는 말로 그 세월을 전해온다.  

대릉원과 첨성대 등 경주의 대표적인 문화재가 몰려 있는 대릉원 일대를 둘러보다 보면 경주의 평화롭고 안온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한복을 빌려 입고 ‘셀카’ 삼매경에 빠진 여인들의 모습도 싱그럽다.

경주향교가 있어 교촌마을로 불리는 그 중심에 최씨고택이 있다. 경주 최씨 가문의 아름다운 고집을 증언하고 있다.
경주향교가 있어 교촌마을로 불리는 그 중심에 최씨고택이 있다. 경주 최씨 가문의 아름다운 고집을 증언하고 있다.

상념에 젖은 채 최씨고택이 있는 교촌한옥마을까지 계림 지역은 1시간 남짓의 산책 코스다. 교촌마을은 경주향교가 있어 교촌마을로 불리는데 그 중심에 최씨고택이 있다. 경주 최씨 가문의 아름다운 고집을 증언하고 있는 최씨고택은 조선 중기(1700년경)에 지어져 12대 동안 만석지기의 재산을 유지했던 거부(巨富)의 혼을 보여준다. 그냥 부자이기만 했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없었을지 모르는 이 오래된 가옥에는 육훈·육언이 전해온다.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고,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흉년기에 땅을 늘리지 말고,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은 물론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으라”는 육훈과 함께 수신의 면모를 일러준 아래의 여섯 가지 지침도 있다.“자처초연(혼자 있을 때 초연하게 지내라), 대인애연(다른 사람을 온화하게 대하라), 무사징연(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내라), 유사감연(유사시에는 과감하게 대처하라), 득의담연(뜻을 얻었을 때 담담히 행동하라), 실의태연(실의에 빠져도 태연히 행동하라).” 내 몸 하나 건사하며 별 뜻 없이 사는 여행자에게 소리 없는 일침을 가한다.

최씨고택에서 얻는 또 하나의 재미는 교동법주다. 최 부자 댁에 전해 내려오는 술 교동법주는 조선 숙종 때 궁중에서 유래된 술이다. 밀 누룩과 찹쌉을 함께 넣어 빚고 100일간 숙성시키는데 특유의 향과 맛을 지녀 중요무형문화재 제86-3호로 지정돼 있다. 최씨고택에서 경주교동법주를 살 수 있다.

오래된 도시의 밤 여행은 더 이색적이다. 경주 밤 여행의 메인은 조명이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안압지)다.
오래된 도시의 밤 여행은 더 이색적이다. 경주 밤 여행의 메인은 조명이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안압지)다.

경주의 낭만적인 밤, 운치 있는 바다

경주의 밤, 오래된 도시의 밤 여행은 더 이색적이다. 경주 밤 여행의 메인은 조명이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안압지)다. 안압지로 불렸던 동궁은 신라의 본궁(월성)의 동쪽에 있는, 왕자가 사는 궁이라 하여 동궁이라 했고 월지는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나무가 빼곡하고 산책로가 잘 닦여 있는 데다 조명이 특히 아름다워 야경이 압권이다. 낮보다는 밤에 산책하는 것이 더 운치 있다. 야간에 운영하는 야간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밤 여행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다.

경주에 내륙만 있는 건 아니다. 경주에도 장쾌한 바다가 있다. 경주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주상절리와 함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닷길을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길이다. 읍천항에서 시작해 출렁다리를 거쳐 주상절리조망공원을 지나 율포진리항까지 이어지는 파도소리길은 왕복으로 걸어도 4km 정도라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자연의 걸작품인 주상절리는 1000도 이상의 용암이 냉각하고 수축하면서 생기는 천연자연의 작품이다. 기둥 모양(주상)의 틈(절리)이 어우러져 주상절리라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536호인 경주 양남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산책로 전 구간은 물론 주상절리에도 조명이 설치돼 있어 밤에도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뚜벅이족을 위해 경주시가 운영하는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여행이 좀 더 편리해진다. 경주에는 다양한 코스의 시티투어버스가 마련돼 있다. 야간시티투어 외에도 낮에는 요일과 출발 장소에 따라 동해안권 코스, 세계문화유산권 코스, 테마파크 코스, 양동마을·남산권 코스 등이 있고 이용료는 성인 기준 2만 원이다. 신경주역과 경주역을 비롯해 여러 호텔에서 탈 수 있다.

여행 정보



경주시 문화관광과 054-779-8585 guide.gyeongju.go.kr
경주시티투어 1666-8788, 054-743-6001 www.cmtour.co.kr
교통 기차 서울역-신경주역, KTX(05:15~21:30) 운행, 약 2시간 10분 소요.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06:10~23:55) 운행, 약 3시간 30분 소요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44-9030 코버스 www.kobus.co.kr
식당 별채반 교동쌈밥 쌈밥, 경주 첨성로 77, 054-773-3322 백미가 코다리찜, 경주 흥무로 51-10, 054-776-3050 도솔마을 한정식, 경주 손효자길, 054-748-9232
숙박 산죽한옥마을 펜션 054-771-1515 www.sanj.co.kr 황남관 한옥 게스트하우스 054-620-5000 www.hanokvillage.co.kr 한옥 소담정 www.sodamjeong.kr

글 · 사진 이송이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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