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쓰러지자 오히려 가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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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적>이 쓰러지자 오히려 가슴 아파

    

대통령 후보들의 경쟁이 숙명적으로 끝났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동서로 갈라진 지역감정은 언제나처럼 변함이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새벽까지 TV에 눈을 맞추며 밤을 새우다가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소설 <숙적, 宿賊>을 떠올려 봤다.

<숙적>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전부터의 원수’와 ‘여러 해 전부터의 적수(敵手)’다.

작가는 소설 <숙적>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의 경쟁 관계를 묘사했다. 서로의 운명을 걸고 싸워야 하는 숙명적 관계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그들의 중심에는 임진왜란을 주도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가 있었다. ‘히데요시(秀吉)’는 ‘고니시(小西)’와 ‘가토(加藤)’를 어린 시절부터 경쟁시켰다. 조선을 침략할 때도 ‘선봉장을 누구로 할까?’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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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시의 동상)

‘고니시(小西)로 할까? 가토(加藤)로 할까?’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제1번 대 1만 8700명,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제2번 대 2만 2800명,

‘가토’는 여기에서도 기분이 상했다. 병력의 숫자가 많은 자신을 두 번째로 세웠으니까.

지나친 경쟁심이 배신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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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본 세키가하라 전투)

히데요시기 죽은 후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가 있었다. 1600년 9월 15일(음력) 오전 7시 30분. 동군 7만 5천명과, 서군 8만 4천 명이 전쟁터에 집결했던 것이다

‘고니시’는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이끄는 동군에 의해 패배를 당해 참수됐고, 주군을 배신한 ‘가토’는 도쿠가와(德川)편을 들어 후일 구마모토(熊本) 일대를 장악했다.

다시 소설 <숙적>으로 들어가 본다.

<어린 시절부터 그 사내(고니시)가 싫었다.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종교(크리스천)도 싫었다. 그러나, 그렇게 싫은 사내와 더불어 같은 주군을 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같이 살아왔던 것이다. 결국, 그가 참수당한 광경을 보면서 크게 웃었다.>

구마모토 일대를 장악한 가토는 우도성의 임시 성주 고니시의 친동생을 할복자살하게 하고, 온가족을 성밖으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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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의 동상)

하지만, ‘가토’는 어찌된 영문인지 오랜 세월의 ‘숙적을 쓰러뜨렸다’는 희열을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숙적’을 동정하는 기분이 가슴 속에 확 퍼졌다.

불교 신자인 ‘가토’는 모든 것이 허무하고, 모든 것이 덧없음을 느꼈다. 그는 싸리나무 옆에서 쪼그리고 앉은 채, 한참동안 구슬픈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경문의 한 구절이 그의 마음속에 뚜렷이 되살아났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저런 경쟁자와 만난다. ‘아무리 경쟁자가 밉다’고 할지라도, ‘숙적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면 어떨까?

승리자의 입장에서, 패배자의 심정도 헤아려 보기를 바란다. 인간의 삶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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